예약·문의

OUR STORY

유월의 이야기

들어설 때의 걱정이 나설 때의 안심으로 바뀌는 자리.유월은 그 자리의 이름입니다.

네이밍 스토리

“유월은,
잎이 가장 무성한 달입니다”

꽃이 피는 달도, 열매가 맺히는 달도 아닙니다.
다만 잎이 제 크기를 다 채우고, 하루의 빛이 일 년 중 가장 길어지는 때입니다.

이름을 정하며 가장 오래 붙들었던 물음은 무엇을 돌려드릴 수 있는가였습니다.
저희가 하는 일은 없던 것을 만들어 드리는 일이 아닙니다.
원래 당신의 것이었던 자리를 되찾아 드리는 일입니다.

유월은 여름의 한복판이 아니라 여름을 여는 달입니다.
앞으로가 더 길게 남아 있는 때. 그런 시간을 돌려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June · Cross Over · Willow Month

유월이라는 이름

  • June유월

    잎이 가장 무성하고 빛이 가장 긴 달

    꽃이 피는 달도, 열매가 맺히는 달도 아닌,잎이 제 크기를 다 채우는 때.여름을 여는 달입니다.

  • Cross Over유월

    건너다, 넘어서다

    오랜 걱정 끝에 진료실 문을 열기로 결정하셨다면,그 결정을 하신 뒤의 길은 저희가 함께 걷겠습니다.

  • Willow Month유월

    버들이 돋는 달을 부르던 옛 이름

    옛사람들은 버들이 돋는 달을 유월⁠(Willow Month)⁠이라 불렀습니다.나무를 뜻하는 글자가 우연히 같은 소리를 냅니다.

로고에 잎사귀 하나를 둔 것도 그래서입니다.

나무를 다 그리지 않고 잎 하나만 남겼습니다.무성한 잎도 결국 한 장에서 시작하고,저희가 마주하는 것도 한 번에 한 사람입니다.

들어설 때의 걱정이 나설 때의 안심으로 바뀌는 자리.유월은 그 자리의 이름입니다.

외과 전문의 조성일

의사 조성일의 약속

외과 의사를 찾아오시는 길은 누구에게나 무겁고 두려운 발걸음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어려운 발걸음의 무게를 깊이 헤아리려 노력합니다.

수술은 언제나 치료의 수단 중 가장 마지막 선택지가 되어야 하고, 환자가 어렵게 결정한 만큼 반드시 그에 합당한 결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과의사로서 제 삶과 진료의 유일한 원칙‘내가 하기 싫은 것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

제 가족에게 권할 수 없는 치료라면 환자에게도 권하지 않습니다.

질병에 대해 명확히 ‘설명’⁠해 드리고, 필요한 치료 과정을 정직하게 ‘안내’⁠해 드릴 뿐입니다. 화려한 미사여구로 포장하거나 불필요한 치료를 덧붙이는 상술은 저의 방식이 아닙니다.

하지만 수술이 결정된다면, 수술실 안에서 모든 문제가 한 번에 완벽하게 해결되도록 저의 모든 역량을 쏟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최선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결코 타협하지 않습니다.

문턱을 넘을 때 안고 오셨던 무거운 의심과 불안이, 문을 나설 때는 가벼운 안도와 위안이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치료가 끝나고 훗날 뒤돌아보았을 때 “참 담백하고 거짓 없는 정직한 병원이었다”⁠는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언제나 원칙을 지키는 의사로 이 자리에 있겠습니다.

유월외과의원장 조성일 드림

유월외과 소개

미션과 비전

MISSION

들어설 때의 걱정이 나설 때의 안심이 되는 공간이 된다

VISION

먼저 온 한 사람이 열 사람에게 알릴 수 있는 병원이 된다

유월외과는 ‘마케팅을 하는 병원’⁠이 아니라 ‘신뢰로 다시 찾게 되는 병원’⁠을 목표로 합니다.

유월외과 소개

유월외과 이야기

유월외과 이야기 · 01

저는 당신의 전화를
직접 받는 게 마음 편한 의사입니다

전공의 시절, 전화는 언제나 나쁜 소식이었습니다. 지금도 벨소리가 울리면 몸이 먼저 반응합니다. 이건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퇴근 이후에 걸려오는 전화를 직접 받습니다. 상담실장을 거치지 않고, 제가 받아서 제가 답합니다. 수술 부위가 부었다, 진물이 난다 — 이런 질문은 몇 마디만 들으면 판단이 서기 때문입니다. 저는 기다리게 하는 의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저를 괴롭히던 습관이, 이제는 그렇게 쓰입니다.

이야기 전문 읽기

전공의 3년 차 때, 72시간 동안 수술방에서 나오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가 끝나면 다음 수술이 잡혀 있었고, 그게 끝나면 또 다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적은 과였고, 손이 되는 사람에게 일이 몰리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산 게 전공의 1년 차부터 펠로우까지, 6년쯤 됩니다. ‘이제 자야지’ 하고 이불을 덮고 누워 본 것이 5년이 채 되지 않습니다. 그전에는 버틸 때까지 버티다가, 쓰러지듯 잠들었습니다.

그 시절, 전화는 언제나 나쁜 소식이었습니다. “선생님, 환자분 상태가 이상합니다.” 지금도 벨소리가 울리면 몸이 먼저 반응합니다. 광고 전화든 안부 전화든 상관없습니다. 벨소리는 벨소리라서,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이건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퇴근 이후에 걸려오는 전화를 직접 받습니다. 상담실장을 거치지 않고, 제가 받아서 제가 답합니다. 요즘은 다들 문자나 메신저를 편해하시지만, 저는 여전히 전화가 편합니다. 20년을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하나 더 있습니다. 수술 부위가 부었다, 진물이 난다, 이게 정상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질문은 몇 마디만 들으면 판단이 섭니다. 대부분은 “괜찮습니다” 한마디로 끝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제가 드리는 전문가로서의 조언이 정말 중요하게 쓰일 때도 많습니다.

저는 기다리게 하는 의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진료실 안에서 가운을 입고 앉아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도 의사의 한 모습이겠지만, 저는 그 편안한 자리보다 먼저 전화를 받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오랫동안 저를 괴롭히던 습관이, 이제는 그렇게 쓰입니다.

유월외과 이야기 · 02

“나는 수술 안 했다”
아버지의 쑥스러운 비밀

8개월 전 여유증 수술을 해드린 아버지가 스무 살 아들과 함께 진료실을 찾으셨습니다. 아들에게 “나는 그런 수술 한 적 없다”⁠고 하셨고 제 앞에서도 끝내 아니라고 하셨지만, 집에 가는 길에 결국 다 털어놓으셨다고 합니다. 자기도 여기서 수술했고,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고, 결과도 마음에 든다고. 본인이 직접 겪어보고 결과를 확인한 곳이었기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아들의 손을 잡고 다시 찾아오신 것입니다. “환자가 소개해 준 환자가 최고의 VIP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아버지의 비밀은, 아직 제 진료실 안에 있습니다.

이야기 전문 읽기

어느 날, 중년 남성 한 분이 여유증 진료를 예약하셨습니다. 진료 당일, 탈의를 하시는 동안 차트를 펼쳐 보니 이름이 낯익었습니다. 기록을 찾아보니 8개월 전, 제가 직접 여유증 수술을 해드린 분이었습니다. 솔직히 조금 긴장했습니다. 수술 후 1주가 지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병원을 다시 찾지 않으시니까요. ‘수술 부위에 무슨 문제라도 생기셨나.’

그런데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신 분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스무 살, 건장한 청년과 함께였습니다. 그날 진료의 주인공은 아버지가 아니라 아들이었습니다. 접수가 아버지 성함으로 되어 있어 다시 접수를 부탁드렸고, 아버지가 나가신 사이 아들과 둘이 남았습니다.

진찰을 하며 아들이 말하더군요. 오는 길에 아버지가 “나는 그런 수술 한 적 없다”⁠고 하셨다고요. 스무 살이나 된 아들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을 리 없습니다. 접수를 마치고 돌아오신 아버지에게 아들이 물었습니다. “아빠도 수술한 거지?” 아버지는 제 앞에서도 끝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속으로 조용히 웃었습니다.

아들은 그날 수술을 예약했습니다. 수술 당일, 두 분은 함께 오셨습니다. 아버지는 익숙한 걸음으로 아들을 입원시키고 먼저 돌아가셨습니다. 수술 준비를 하며 아들이 말했습니다. 진료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아버지가 결국 다 털어놓으셨다고요. 자기도 여기서 수술했고,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고, 결과도 마음에 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아들에게 여유증 수술을 고백하는 일이 내심 부끄러우셨을 겁니다. 그러니 진료실에서까지 아니라고 하셨겠지요. 하지만 아들이 같은 고민을 안게 되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아들의 손을 잡고 다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본인이 직접 겪어보고 결과를 확인한 곳이었으니까요.

수련 시절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아직 기억합니다. “환자가 소개해 준 환자가 최고의 VIP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직접 경험해 보고 좋다고 판단해서 보내주신 분, 그것도 가족이라면 저로서는 가장 소중할 수밖에 없는 최고의 VIP입니다.

아버지의 비밀은, 아직 제 진료실 안에 있습니다.

유월외과 이야기 · 03

15년째 신고 있는
슬리퍼 한 켤레

전임의 시절, 새벽 응급 수술을 받고 무사히 회복하신 분의 따님이 고맙다며 슬리퍼 한 켤레를 주셨습니다. 2011년의 일이니 15년째, 바닥이 다 닳은 그 슬리퍼를 지금도 신고 있습니다. 지금 진료실을 찾아오시는 분들은 응급실만큼 급하지 않지만, 저는 두 진료를 다르게 대하지 않습니다. 새벽에 저를 깨우던 그 전화벨과, 지금 진료실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는 저에게 같은 무게입니다.

오늘도 그 슬리퍼를 신고, 진료실에 서 있습니다.

이야기 전문 읽기

전임의 시절이었습니다. 새벽 두세 시에 응급 콜을 받고 수술방으로 들어가는 일이 특별하지 않던 때였습니다. 그날 실려 온 분은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일하시던 분이었습니다. 굴러떨어진 바위에 맞아 몸 여기저기가 부러진 상태였는데, 정작 급한 건 뼈가 아니었습니다. 비장이 터져 있었습니다. 뼈는 시간이 붙여 주지만, 터진 비장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새벽에 수술방에 들어가 비장을 절제했고, 그분은 다행히 무사히 회복하셨습니다.

퇴원할 무렵, 그분의 따님이 저에게 고맙다며 슬리퍼 한 켤레를 주셨습니다. 그때 제가 살이 꽤 쪄 있었는데, 신발 구멍에 끼우는 작은 곰 인형 액세서리까지 하나 꽂아서요.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는 사실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곰은 기억이 납니다.

그 슬리퍼를 지금도 신고 있습니다. 2011년의 일이니 15년째입니다. 바닥은 이미 다 닳아 떨어졌습니다. 왜 아직 신느냐고 물으면 저는 보통 “귀찮아서요”⁠라고 대답합니다. 거짓말은 아닙니다. 저는 물건에 의미를 붙이는 성격이 아니고, 아직 신을 만한 걸 굳이 바꾸는 사람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따금 그 슬리퍼를 보고 있으면, 당시의 긴박함이 문득 떠오르곤 합니다.

지금 제 진료실을 찾아오시는 분들은 생명이 오가는 상황에 놓인 분들이 아닙니다. 여유증으로, 부유방으로, 오래 앓다가 오신 분들입니다. 응급실만큼 급하지 않고, 그만큼 극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저는 두 진료를 다르게 대하지 않습니다. 새벽에 저를 깨우던 그 전화벨과, 지금 진료실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는 저에게 같은 무게입니다.

오늘도 그 슬리퍼를 신고, 진료실에 서 있습니다.

예약·문의

다시, 찬란한
당신의 계절을 위해

오시기 전의 걱정은 저희가 나누어 지고,
오신 다음의 일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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